쌍용 로디우스, 역사상 가장 못생겼다는 자동차의 슬픈 역사
전설의 디자이너가 만든다던 차

한국자동차 산업의 역대급 괴작으로 불리는 차가 있습니다. 쌍용을 망하게 만들고, 못생긴 자동차 리스트에는 항상 오르는 쌍용 로디우스입니다. 처음부터 로디우스가 이렇게 못생긴 디자인으로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무쏘라는 전설적인 SUV를 탄생시킨 영국 왕립예술대학의 켄 그린리 교수가 디자인을 담당한다고 발표됐거든요. 무쏘는 당시 갤로퍼 같은 투박한 경쟁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련된 디자인으로 시장을 평정했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또 엄청난 디자인이 나오겠구나”라고 기대했죠.

쌍용자동차도 자신만만했습니다. 당시 국내 최고급차였던 체어맨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거든요. 로디우스라는 이름도 길(Road)과 제우스(Zeus)를 합친 것으로 ‘길 위의 제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야심작이었던 거죠.
정부의 뒤통수, 2003년 세법 개정 사건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원래 쌍용은 당시 붐을 일으키던 9인승 미니밴 시장을 겨냥해서 멋진 차를 만들려고 했었어요. 초기 컨셉트를 보면 C 필러 선에서 디자인이 매끈하게 떨어지는 쿠페형 루프라인을 가진 나름 괜찮은 형상이었죠. 지금의 기아 카니발 같은 느낌의 세련된 미니밴이었던 겁니다.
2000년대 초반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중산층들이 여가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미니밴과 SUV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9인승 미니밴은 여러 혜택이 있었어요. 7인승 이상이면 연간 6만5천원이라는 저렴한 자동차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8인승 이상은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도 이용할 수 있었거든요. 게다가 가솔린 차량 대비 연비도 좋았고요.

그런데 2003년, 정부가 갑자기 자동차세법을 바꿔버렸습니다. 7인승 이상이면 받을 수 있던 연간 6만5천원 자동차세 혜택을 11인승 이상으로만 제한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7~9인승은 이제 승용차 취급해서 비싼 세금을 내라는 거였죠. 완전히 룰을 바꿔버린 거예요.
멘붕 상태에서 만든 급조품

그래서 쌍용은 완전 멘탈붕괴 상태에서 9인승 계획을 부랴부랴 11인승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개발을 갑자기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억지로 차체를 늘리고 3열 뒤에 공간을 더 확보하려다 보니 원래 멋있던 디자인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어요.
더 큰 문제는 켄 그린리 교수는 무쏘나 뉴 코란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디자인 컨셉트 부분에만 관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 양산화 작업과 세부 디테일은 쌍용 내부 디자인팀이 담당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의 역량이 켄 그린리 수준에는 못 미쳤던 거죠. 급작스럽게 바뀐 설계에 맞춰 세부 요소들을 처리하다 보니 엉성하게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컨셉트카 시절에는 체어맨과 패밀리룩을 이루며 전반적으로 온건하게 처리됐던 디테일들이 양산화 과정에서 완전히 괴상하게 변해버린 거예요. 특히 뒷부분의 D 필러 디자인은 정말 심각했는데, 원래는 매끈하게 떨어지는 라인이었는데 갑자기 직각으로 뚝 잘라버린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실제 결과물은 완전 재앙이었습니다. 앞부분은 마치 투구를 쓴 곤충 같았고, 뒤쪽은 직각으로 뚝 떨어지는 D필러 때문에 영구차 같다는 소리를 들었죠. 전체적으로 SUV도 세단도 MPV도 아닌 정체불명의 괴상한 차가 되어버린 겁니다.

억지로 늘어난 11인승 구조 때문에 실용성도 엉망이었어요. 3열까지는 그럭저럭 앉을 만했지만 4열은 거의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았거든요. 그러면서도 차체는 무쓸데없이 길어져서 주차하기도 어렵고 운전하기도 힘든 차가 됐습니다.
가격은 또 어땠냐면, 2004년에 무려 4천만 원대로 책정됐어요. 그 당시 돈으로 엄청난 고가였습니다. 같은 가격이면 수입차도 살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굳이 이 괴상한 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처참한 결과와 여파
그 결과 판매량이 참담했습니다. 출시 첫해 목표 판매량의 10분의 1도 못 팔았어요. 출시 1년 후에는 기아에서 그랜드 카니발을 내놓으면서 완전히 게임 오버가 됐고요. 카니발은 제대로 된 9인승으로 나와서 로디우스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을 얻었거든요.
해외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에 수출했지만 현지에서도 ‘못생긴 차’라는 평가만 받으며 판매 부진을 면치 못했어요.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가장 못생긴 차 100선’에 3위로 올라가는 불명예까지 안게 됐죠. 심지어 영국 자동차 예능 프로그램 탑기어에서도 로디우스를 못생긴 차 2위로 선정했을 정도예요.
켄 그린리 교수는 자신의 컨셉이 이렇게 망가진 걸 보고 당연히 분노했습니다. 사석에서 “우린들 이렇게 디자인하고 싶었겠냐”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어요. 이후 켄 그린리는 쌍용차와 멀어지게 됐죠.
쌍용자동차의 몰락

쌍용자동차는 로디우스 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돈 잘 벌어다 주던 이스타나 같은 승합차는 단종시키고 이런 괴작을 내놓은 거니까 완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셈이었죠.
로디우스가 직접적인 법정관리 원인은 아니지만,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된 후 출시된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이 모두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회사가 계속 적자를 기록했어요. 결국 2009년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고, 그 유명한 77일간의 파업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 거죠.
물론 쌍용자동차 내부의 디자인 역량 부족도 한몫했지만, 근본적으로는 2003년 세법 개정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어요. 만약 원래 계획대로 9인승으로 나왔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쌍용이 오랫동안 중국이나 인도에 팔려다니는 슬픈 역사를 겪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