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될뻔한 아카디아, 지금봐도 너무 이뻐

1994년, 대우자동차는 임페리얼의 참패 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뉴그랜저와 포텐샤의 맹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우가 꺼내든 마지막 카드가 바로 아카디아였죠.
아카디아는 대우가 혼다의 명차 레전드를 정식으로 도입해 국내에서 조립 생산한 차량이었습니다. 혼다에서 부품을 수입해와 부평공장에서 조립했지만, 그 결과물은 당시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차량이었어요.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과 성능의 완벽한 조화

아카디아의 첫인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전고가 1,405mm에 불과한 낮고 슬림한 실루엣은 당시 뚱뚱하고 둔탁했던 국산 대형차들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2,910mm라는 어마어마한 휠베이스는 현재의 준대형차와도 맞먹는 수준이었죠.
더 놀라운 건 성능이었습니다. V6 3.2리터 C32A 엔진이 뿜어내는 220마력은 당시 국산차로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이었어요.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스트럿 바까지 갖춘 섀시는 그야말로 혼다 기술력의 집대성이었습니다. 4단 자동변속기의 3단까지 짧은 기어비는 폭발적인 가속력을 만들어냈고, 킥다운 시 노즈가 붕 뜨면서 치고 나가는 느낌은 지금 타도 소름이 돋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금수저들만 탈 수 있었던 비싼 명품

하지만 아카디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격이었죠. 당시 그랜저 두 대 값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달고 나온 아카디아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제네시스 G90 엔트리 모델 가격이었으니 정말 금수저들이나 탈 수 있는 차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대형차 시장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중후함이나 위엄 같은 부분에서는 경쟁차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성능은 압도적이었지만 나이 든 부자들 취향에는 맞지 않았던 거죠.
모든 걸 갖췄지만 시장에서 외면받은 비운의 명차

아카디아는 분명 좋은 차였습니다. 성능도 뛰어났고 디자인도 세련됐으며 실내 공간도 넓었어요. 하지만 높은 가격과 브랜드 파워 부족, 그리고 당시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과 맞지 않는 캐릭터 때문에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체어맨의 등장, 각종 수입차들의 본격적인 공세, 그리고 에쿠스의 등장으로 아카디아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어요. 대우자동차의 부도까지 겹치면서 아카디아는 할인 폭탄을 맞고 조용히 사라져 갔습니다.
현재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은 차

지금 중고시장에서 아카디아는 600만원 내외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품값과 정비비가 만만치 않아서 “아카디아 오너는 돈 좀 있거나 차에 올인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생겨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디아는 여전히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차로 기억되고 있어요. JDM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차량이고, 지금 타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성능과 디자인을 자랑하거든요.
만약 대우가 좀 더 현실적인 가격으로 아카디아를 출시했다면, 그리고 좀 더 오랫동안 버텼다면 한국 자동차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카디아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아쉬운 명차로 남아있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