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스포츠카를 만들지 않는 이유 : 못만드는게 아니라 안만드는겁니다
최근 몇 년간 현대자동차의 성장은 눈부신 것이 사실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받는 디자인과 품질, 각종 권위 있는 자동차 상을 휩쓸었지만 여전히 그냥 가성비좋은차 정도의 인식이죠
이런 현대가 스포츠카를 내놓으면 어떨까요? 이미 현대는 고성능 ‘N’ 브랜드를 론칭하며 모터스포츠 DNA를 강조하고, WRC(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는 제조사 부문 챔피언까지 차지하며 기술력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현대 스포츠카는 출시도 안하고 있던것 마저 다 단종시켜버리고 있는데요. 왜 안만드는걸까요?
벨로스터 N과 스팅어 단종, 그 의미는?

현대차는 N 브랜드의 시작을 알렸던 벨로스터 N의 단종을 2022년 발표했습니다. 3도어 핫해치라는 특이한 형태와 뛰어난 주행 성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모델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쿠페형 해치백의 수요 감소와 전동화 전략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여기다가 더불어 코나 N도 2023년 단종되었고 아반떼 N도 단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듭니다.

비슷한 시기에 기아 역시 스팅어의 단종을 결정했습니다. 스팅어는 기아의 첫 번째 후륜구동 스포츠 세단으로, 3.3 V6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한 GT 모델은 제로백 4.9초의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동급의 독일차 대비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단종소식은 여전히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순수 스포츠카나 고성능 모델의 입지가 좁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차 그룹이 N 브랜드를 통해 고성능 차량을 내며, 전기차 기반의 고성능 모델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어 완전히 스포츠카 시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요타의 스포츠카 전략: 86과 수프라의 성공 사례

현대차와 대비되는 사례로 도요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대중차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스포츠카 라인업을 유지해왔습니다. 86(이전 GT86)은 스바루와 공동개발한 합리적인 가격의 후륜구동 스포츠카로, 수프라는 BMW와 협업하여 복활시킨 도요타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모델입니다.

특히 86은 약 3천만 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순수한 운전의 재미를 제공하는 ‘어포더블 스포츠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런 고성능 스포츠카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엔지니어링 역량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판매량이 많지 않더라도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이러한 모델을 유지하는 도요타의 전략은 현대차와 큰 차이점입니다.
N 비전 74,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다

그런데 2022년 7월, 현대 N 데이 2022에서 공개된 ‘N 비전 74’ 콘셉트카는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현대 포니 쿠페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수소연료전지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이 콘셉트카는 현대차의 헤리티지와 미래 기술을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뜨거운 반응은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오히려 나왔는데요. 레트로한 디자인에 미래기술을 접목한 스포츠카에 해외 네티즌들과 자동차 애호가들은 정말 기대되며 성능만 괜찮다면 충분히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대 스포츠카 이제 슬슬 내놓을 때가 되었다.

렉서스는 LFA를 통해 한 대를 판매할 때마다 1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은 현재 렉서스의 브랜드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으며, 중고차 시장에서 1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각종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으며,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E-GMP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모델들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나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한 고성능 스포츠카의 출시는 단순한 판매 이익을 넘어 브랜드 가치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N 비전 74와 같은 디자인 요소를 활용한 생산형 모델은 현대차의 디자인 역량과 기술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술력은 충분하다

현대차는 이미 WRC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N 브랜드 모델들의 성능도 이미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죠. N 브랜드의 철학인 ‘커브에서 즐거움(Corner Rascal), 일상에서의 실용성(Everyday Sports Car), 서킷에서의 성능(Race Track Capability)’은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도요타가 86과 수프라를 통해 스포츠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처럼, 현대차도 N 브랜드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선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벨로스터 N과 스팅어의 단종은 아쉽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고성능 모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 현대차에 필요한 것은 기술적 결단이 아닌, 마케팅적 결단일지도 모릅니다. 수익성보다는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로서 헤일로 카를 바라본다면, “누가 현대차를 2억 원에 사냐”는 질문은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N 비전 74를 만든 브랜드라면 믿고 살 수 있다”는 반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현대차의 스포츠카, 우리가 기다리는 이유
자동차 애호가들이 현대차의 스포츠카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순히 또 하나의 빠른 차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이제 기술력과 디자인,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음을 스포츠카라는 가장 극적인 형태를 통해 증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벨로스터 N이 그러했듯, 아반떼 N이 그러했듯, WRC 우승이 그러했듯, 비록 당장은 살 수 없는 가격일지라도, 현대차의 스포츠카는 또 한 번 우리에게 자부심을 선사할 것입니다.